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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이상한 나라의 쇼거스'
키퍼링 : 노멘님
시나리오 번역 : 연어님
플레이어 : 나 (김보나), 앤디님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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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나무 바닥에 놓인 의자가 위태롭게 삐걱 하는 소리를 냈다. 저거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 홀을 정리하고 있던 보나는 밀던 대걸레를 멈추고 웨이를 돌아보았다. 보나의 시선에 웨이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보나를 돌아보았다. 보나의 무언의 시선에 대답하듯 웨이는 입에서 담배를 빼고는 뻐끔, 한 번 입을 열었다 닫아 담배 연기로 고리를 만들어 뿜었다. 보나는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그 소문이요, 소장님."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 보나의 호칭에 웨이는 탁 소리가 나도록 기울였던 의자를 다시 바로해 앉았다.
"어."
"찾아보니까 인터넷에서도 자주 도는 소문인 것 같던데요."
입 안에 남은 연기를 마저 뱉어 그 뿌옇게 흐려지는 궤적을 눈으로 좇으며, 웨이는 술이 오른 손님이 떠들던 소문을 떠올렸다.
토끼를 봤다. 손님은 그렇게 말했다. 거리에 고양이나 개가 돌아다니는 거야 이곳에서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토끼는 확실히 낯설었다. 이런 골목골목 가게가 들어찬, 풀쪼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길에 토끼라니. 더욱 이상한 점은 그 토끼가 사람 옷을 입고 두 발로 서 있었다는 증언이었다. 여기 여기 오시기도 전에 취했어요? 손님의 빈 잔에 술을 한 잔 더 따르며 웨이는 그렇게 웃었지만 확실히 그냥 넘기기에는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토끼는 이제 지긋지긋한데."
담뱃재를 털며 웨이는 킬킬 웃었다. 보나는 웨이의 말에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죠."
"인생..."
"그거 저까지 말버릇 되겠던데요."
둘에게 있어 토끼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사라지기에, 일 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보나는 카운터 위에 놓여있던 종이 묶음을 툭 웨이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 던졌다.
"가실거죠?"
"의뢰가 들어온 건 아니지만...가야지."
할 일이잖아? 담배를 비벼 끄고 웨이는 그렇게 말하며 프린트물을 집어 들었다. 보나가 인터넷에서 조사해 온 소문들인 것 같았다. 손님이 토끼를 봤다는 블록을 주변으로 꽤 이상한 증언들이 나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교하던 친구가 골목길 코너를 돌자마자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가 지나가자 건너편에 있던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그런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들.
"...적어도 '무서운' 토끼는 아닌가본데요."
유난히 한 단어를 강조하는 보나의 말에 웨이는 피식 웃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토끼가 사람을 으깨 버린다는 종류의 괴담은 없었으니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무서운건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괴상한 토끼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일이라면 둘의 귀에 들어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상 현상 상담 받습니다. 웨이는 가게 문에 붙여 둔 종이를 쳐다보았다. 보나는 바닥을 닦던 대걸레를 다시 청소용구함에 던져 두었다. 양동이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홀에 깡 하고 울려 퍼졌다. 손을 앞치마에 슥슥 닦고 보나는 웨이에게로 다가왔다.
"제 말은 총 쓸만한 일은 없을 것 같단 뜻인데...챙기실거죠?"
"팔다리 놓고 일하러가진 않잖아?"
웨이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보나는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지난 번처럼 총을 꺼낼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보나의 솔직한 바람이었으나, 토끼가 엮인 일이라면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동화책도 들고가세요. 혹시 모르니까."
"앨리스는 누구 덕분에 외웠어."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것처럼 둘은 그런 말을 주고받고는 시계를 쳐다 보았다. 적당히 출발 시간을 정하고 가게를 나서, 웨이는 가게의 셔터를 내렸다. 히스 (HISS) 라고 적힌 가게 간판을 한 번 올려다보고 웨이는 차 열쇠의 홀더를 손가락에 걸어 한 바퀴 돌렸다. 낮 햇빛이 자동차 열쇠에 반짝 빛났다.
골목길은 생각만큼 외진 곳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에는 확실히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유흥가임을 알리는 가게의 간판들은 모두 꺼져 있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고요한 골목길을 샅샅히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골목 저쪽 편에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의 끝에 있는 것은 토끼였다. 새하얀 털에 쫑긋 솟아오른 기다란 귀를 한 그것은 크기도 두 사람이 상식 선에서 알고 있는 토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토끼가 두 발로 서 있고, 어딘가의 종업원처럼 나풀거리는 까만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토끼로 보일 법도 했다.
"아, 인생아. 정말로 튀어나오잖아. 빌어먹을 토끼."
가슴을 쓸어내리며 웨이가 입을 열었다. 옆에서 보나는 안도한 것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디에서 본 거랑은 다르게 귀여운데요. 당근이라도 줘 보실래요?"
"토끼가 담배도 먹던가?"
적어도 사람을 어깨에 태우고 다니는 토끼는 아니라는 사실에, 둘은 긴장이 풀린 것처럼 그런 말을 주고 받았다. 보나는 웨이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그 옆얼굴을 돌아보았지만 웨이의 얼굴은 진지해 보였다. 안 되겠어, 이 소장님. 보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자리에 쪼그려 앉아 토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토끼는 귀를 쫑긋거리며 둘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발을 움찔움찔 하는 것이, 당장이라도 둘에게서 도망갈 것처럼 보였다.
"저거 도망치려는것 같은데. 잡을까."
"말은 안 통할까요?"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말을 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둘은 예전에 말이 통하는 토끼도 본 적이 있었던지라, 웨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말이 통하면 담배 싫다 좋다 정도는 했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서로를 향해 눈짓한 뒤 동시에 토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토끼는 둘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려서 그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처음과 같은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서서, 토끼는 두 손을 입가로 가져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사람이 비웃는 모양새처럼.
"쏠까."
"저기요."
웨이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보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토끼 쪽을 쳐다보았다. 둘을 쳐다보던 토끼는 다시 속력을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네 발이 아닌, 사람처럼 두 발로 달려가는 토끼를 보며 둘은 그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는 정말 싫어. 웨이의 불평에 진심 어린 눈빛으로 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골목을 돌고 돌아 달리던 중, 토끼가 멈추어 섰다. 잡을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한 바짝 두 사람이 속력을 높여 달려갔을 때였다.
발 아래가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보나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맨홀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시커먼 구멍이 두 사람의 발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둘의 몸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토끼 정말 싫어요."
멀어져 가는 하늘을 보며 보나가 중얼거렸다.
"아..."
웨이는 얼굴에 실소를 머금었다.
"멸종 시켜 버릴거야."
웨이의 말을 끝으로, 아득하게 떨어져 내리는 느낌에 둘의 의식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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