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해가 꽤 짧아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부쩍 추워졌지. 어둑한 밤길을 달리며 노조무는 상념에 잠겼다. 엔진 소리가 조금 커졌다. 기억에서 무언가를 지우려는 것처럼 노조무는 라디오를 틀었다. 웅성거리는 뉴스 소리가 노조무의 귀를 스쳐 흘러 나갔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노조무는 아직도 어둠이 무서웠다.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눈 앞에서 사람이 갈가리 찢겨져나가던 그 감촉. 방금까지 입술과 입술로 온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이 살려달라는 비명과 함께 끔찍한 피냄새를 흩뿌리며 찢겨져 나가던 소리가 스멀스멀 노조무를 잠식해왔다. 고개를 저으며 노조무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것은 뭐였으며 그것들은 뭐였을까. 그날 노조무가 날려간 낯선 시대는 어디였으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걸까.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죽어버리고,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는 하지만 무엇 하나 명쾌하지 않게 수수께끼로 가라앉아버렸다. 이따금 노조무는 7구의 그 거리를 서성였지만 환청이 들리는 일도, 무언가를 만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미국 킹덤 병원의 이번 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쏜 코퍼레이션의 대표 이사는...'
노조무는 저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상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급정거에 항의하듯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속력을 높이며 노조무는 떫떠름한 기분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
집에 도착해, 노조무는 다급히 방 구석에 처박아 둔 짐 상자를 꺼냈다. 아버지의 유품들이었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먼지가 쌓인 짐들을 뒤적였다. 낡은 백팩을 꺼내어 뒤집었을 때 그 안에서 필기구들과 여권이 툭 떨어졌다. 노조무는 다급히 여권을 펄럭펄럭 넘겨보았다.
귀국 직전 아버지의 행선지는 미국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노조무가 다음 장을 넘겼을 때 낡은 메모지가 한 장 떨어졌다. 고이 접혀있는 그것을 폈을 때, 노조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볼펜으로 휘갈겨 쓴 아버지의 필적이었다.
'1975년, 미국 Y 주, 한스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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