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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리플레이/리플레이 소설

[코튼캔디 어사일럼] 유년이 끝나는 때

 

https://youtu.be/oWA4TddxXG4

 

아버지는 말했죠

"걱정말거라, 걱정하지 말거라. 얘야. 너에게는 준비된 앞날이 있단다.

걱정 말거라,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Don't You Worry Child" - Swedish House Mafia

 

 

 

마지막으로, 케빈은 안경을 벗어 하얀 편지 봉투 위에 올려두었다. 안경줄이 그 위로 스치면서 내는 자르락 소리만이 조용히 기숙사 안에 울려 퍼졌다. 정적 속에서 케빈은 물끄러미 그것들을 내려다 보았다. - 받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 이름도 없는 하얀 편지봉투와, 그 위에 올려진 안경 하나.

 

어째서 안경을 쓰고 있냐고 누군가 물었던 적이 있다. 제법 오랜 기억이니 아마 기억 속에서 사라진 동생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케빈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케빈은 안경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의체의 시력은 인간보다 월등히 좋았으므로 확실하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케빈이 이든 로이젠을 만나던 날은, 이 또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안경을 벗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 날의 대화는 마찬가지로 모두 잊어버렸지만 안경 너머로 선하게 웃던 그 눈빛을 기억한다.

하늘이 유독 눈이 부신 날이었다. 

닮았네, 라고. 안경 너머의 눈을 보며 케빈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안경을 벗은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낯설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기분에 케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울 속 그 얼굴은 케빈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보다도 더 이든을 닮아 있었다. 그것이 풀어지듯 웃는 표정 때문인지, 생각할 때 일자로 다물리는 입술 때문인지 정확히 집어 낼 수는 없었지만은.

 

창 밖에서 긴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 케빈은 거울에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며칠 사이 동행이 되어 준 고양이가 불만스럽게 탁탁 꼬리로 창틀을 치고 있었다. 미안, 안제. 금방 갈게. 케빈의 말에 안제라 이름 붙은 고양이가 짧게 우웅 하는 소리를 냈다.

등 뒤로 문을 닫고 나와 본 복도는 여전히 적막했다. 케빈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고요한 복도를 뛰놀던 발소리가 귓가에 생생했다. 가볍고, 무겁고. 어떤 것은 빠르고, 또 어떤 것은 느린. 이곳에 살았고 이곳을 스쳐 지나간 많은 아이들의 모습과 곤란한 듯 그런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던 아비게일의 발소리와. 케빈 또한 그 소리를 피해 도망치는 발걸음들 중 하나였고.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갔네요. 모든 것들이 사라졌네요.

케빈이 무기였기 때문에 잡지 못하고 흘려보내야 했던 그 많은 기억들이 하얀 먼지처럼 계단 난간에 앉아 있었다.

 

케빈은 천천히 눈을 떴다. 돌이켜 말하자면, 케빈이 무기였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들이었다. 이곳에 왔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동생들의 못미더운 오빠일 수 있었다. 가족이 될 수 있었다. - 케빈에게 있어 가장 소중했던 인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나는 당신의 무기였던 사실에 감사해요. 당신은 정작 나를 한 번도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이름을 불러주실 때마다 행복했어요.

 

나와 만나줘서, 고마웠어요.

 

계단을 내려가며 케빈은 한 번 방 쪽을 올려다 보았다.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적고 또 적어도 마음이 차고 넘쳐, 어설프게 요령 없이 반복 된 문장들이 담긴 편지를. 선생님이 행복하시기를 언제나 기원할게요. 서툴지만 정말로 모든 글귀들이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서 담아낸 문장들을.

그리고 끝내 그 망설이다가 담아내지 못한, 수 백 번도 더 떠올리다가 아쉽게 지워버린 생각들을, 케빈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머릿속에 새기고 지워버렸다.

 

"정말로 선생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만 정말로 그랬다면 이런 형태로 만날 수 없었겠지. 그러니까 결국 그 모든 일에 감사할 뿐이라고.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현관에 이르렀다가 케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아마 케빈은 같은 길을 고를 것이다.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조금 말썽이라도 부려볼까. 모범생은 한 번 해봤으니까. 

새벽의 조용한 기숙사를 웃는 눈 속에 담아내고 케빈은 현관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새파랗게 동이 트는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은 채, 케빈은 문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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