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시움이 찾아갔을 때 스페스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별일이야, 꼭 인간처럼 구네. 그런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아비시움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았다. '형'의 심기를 거슬러 굳이 좋을 것은 없었다. 대신 아비시움은 흠 하고 헛기침으로 자기 존재를 어필했다. 돔 가장 높은 곳, 누구도 올려다보지 않는 그 높은 꼭대기의 난간 위를 춤 추듯 걷던 스페스가 빙그르 아비시움을 돌아보았다. 돔의 야경이 담겨 반짝이는 눈이었다.
"별이 예쁘네."
스페스가 말했다.
인간이 만든 불빛 때문에 별은 하늘에서 무척 미약한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둘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페스의 말에 아비시움도 조금 열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게.
여기에서 올려다 본 별은 많기도 하고, 움직이지도 않고, 자리에서 미약하게 반짝반짝거리기만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비시움은 감흥 없는 목소리로 동의했다.
형제들은 저 밤하늘을 넘어 별로 돌아갔을까. 아벨파를 생각하며 아비시움은 계속 별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인간은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하던데, 그보다 더 죽음이 숭고한 우리들은 무엇이 되는걸까. 막연한 감상이 가슴께를 눌렀다. 끝까지 인간과의 공존을 주장했던 그들의 결연함과 아름다움이 다시 떠올라 아비시움은 조금 코 끝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그들에게 있어 죽음으로의 선택은 인간의 지성은 이해할 수 없는 고매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동시에 동족에게 그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무도함이 그 짧은 생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찾아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별을 바라보던 스페스는 어느새 별처럼 빛나는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비시움은 스페스의 옆에 나란히 섰다가,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 보기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난간에 걸터 앉았다. 앉아서 올려다보는 스페스의 얼굴에는 알록달록하게 밤의 불빛이 어려 있었다. 반짝이는 빛을 담은 눈을 보다가, 아비시움은 다시 스페스가 쳐다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살려둘거야, 그 인간들?"
아비시움의 물음에 스페스는 응? 하고 천진한 얼굴로 되물었다.
우리와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성좌의 힘을 빌려 쓰고 있는 입장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었다.
"몇 번 말 했잖아?"
"그래도 인간이야."
나름대로, 보다 그들에 가까우니 일종의 대표자나 대사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에게 그런 숭고한 결정을 허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 아비시움은 눈살을 찌푸렸다. 본체인 스페스보다 인간과 더 오래 섞여 있었던 것은 아비시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비시움으로서 스페스의 결정은 회의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납득하지 않으면?"
"그럼 죽는거지, 뭐."
아비시움의 볼멘소리에 스페스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럴거면 한 번에 같이 죽여버려도 될 것을, 어째서 구태여 수고스러운 짓을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스페스가 늘 그렇듯 제대로 얘기 해 줄 리가 없었다. 무의미하게 대화가 길어질 뿐이었다. 결국 한숨 끝에 아비시움은 몸을 일으켰다.
간다.
다시 돌아오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겠지. 곧 7돔은 무너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인류에는 끝이 도래할 것이다. 동족에게 한 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이들에게, 그보다 위대한 존재가 초래한 멸망은 그렇게까지 억울한 일은 아니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등을 돌려 걸으면 스페스는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