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시르님의 마스터링으로 늅리프님, 쥬다님, 페리윙클님과 함께 플레이하고 있는 겁스 초상능력 캠페인의 리플레이 소설입니다.
* 페르소나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입니다.
* 본 글은 각색된 내용이며 일부 실제 플레이와 다른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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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존나 아닌데.
“뭐가 아닌데?”
“맞아, 떡볶이 얻어 먹었으면 됐지.”
자기도 모르게 푹 한숨을 내쉬면서 한 소리에 승하와 지하의 채근이 따라붙자 보드람은 콧잔등에 잔뜩 찌글찌글한 주름을 만들고서는 입을 삐죽였다.
“무사히 야자를 쨌으면 지금쯤 한조를 할 지 겐지를 할 지 고민하고 있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리 아니겠냐?”
“근데?”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내가 지금 여기서 그냥 오타쿠랑 오컬트 오타쿠랑 신지하 밑에서 시다 짓을 하고 있냐 이거지.”
“오타쿠라고 하지 말랬지!”
“오컬트 오타쿠라니 너무하네!”
“야! 나는 왜 그냥 신지하야!”
이어지는 푸념에 여자 셋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이래서 싫다는 거였는데. 과장되게 한 쪽 손을 내저으며, 보드람은 시선을 반대쪽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 위로 던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달그락거리며 부딪치는 소주병들이 보였다. 특별히 무거운 건 아니었지만 귀찮은 무게였다.
힘들지는 않지만 귀찮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격도 그랬다. 점심 시간까지만 해도 보드람은 오늘 야자 담당 선생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하면 잘 피해서 나올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었지, 무기력증 같은 건 뇌에 한 번 담가 보지도 않았던 소잿거리였다.
오승하는 뉴스에까지 나온 사건이라며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지만 셋 중 누구도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신지하와 김보드람은 어제 경쟁전이 누구 때문에 졌는지 별 논의거리도 되지 않을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이 연은 여느 때처럼 휴대용 게임기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거 그냥 춘곤증 아니냐? 나도 요새 밥만 먹으면 졸리던데.”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보드람은 말 끝에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승하의 반응이 특별히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양한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기력증은 그 맥빠지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오르내리고 있는 이야기였다. 원인도 모르고 해결책도 모르는 기묘한 증상이고 그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드람이나 연, 그리고 승하같이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문제였다. 오늘 몇 교시가 체육인지, 급식은 맛있는 게 나올 것인지. 중요한 것들이라면 그런 것들이었다.
그래도 승하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데에야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승하 성격에 관심있는 게 생겼다는 데 캐내지 않고 그냥 넘어 갈 리도 없는 노릇이었고, 지금은 심드렁한 그 셋은 떡볶이를 사 주겠다는 제안이라면 홀라당 따라 나설 사람이라는 것을 승하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발, 그놈의 떡볶이. 얻어먹는 게 아니었는데.
목적지 앞에 걸음을 멈추고 보드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승하를 제외한 나머지도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세계에 갔다왔다는 소리를 퍼뜨리고 다니는 아저씨가 있대. 승하가 떡볶이를 먹으며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아까는 무기력증이더니 이번에는 무슨 이상한 세계 얘기야.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투덜거리자 승하는 그 무심한 반응을 되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무기력증이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니까 오컬트적인 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조사해본거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지만 그렇다고 먹은 떡볶이를 다시 뱉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나처럼 승하의 페이스에 이끌려, 보드람이 뚫어 놓은 루트를 통해 편의점에서 뇌물용 소주도 사서 기껏 도착한 곳은 그 소문의 주인공이 사는 곳이었다. 사는 곳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싶을 정도의 외견이었지만. 낡은 현판에는 무슨 고시텔이라고 쓰여있었지만 퀴퀴한 곰팡이 냄새에 기분 나쁘게 벽을 타고 자란 덩굴 식물의 모습까지 겹쳐, 그곳은 누가 봐도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갈 사람?”
그 비주얼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걸음을 멈춘 승하가 말했다. 도리도리. 가장 먼저 이 연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갑자기 잘 생긴 남자가 불쑥 쳐들어가면 좀 그림이 이상하지 않겠냐? 가라, 지하몬! 문을 부숴버려!”
“아, 왜 나야!”
“지하몬! 몸통 박치기!”
보드람의 등쌀에 지하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한 번 높이더니, 별 수 없다는 듯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훅 축축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돈 주고 살아달래도 이런 데서는 살기 싫겠다.”
“몇 호 랬지?”
“203 호.”
“이래서야 완전히 폐가 탐험인데...바닥 푹 꺼지는 건 아니겠지.”
승하를 포함하여 넷은 두런두런 그런 감상을 주고받으며 먼지가 푹푹 이는 계단을 올랐다.
이 층에 올라 보면 전등이 나간 듯 깜깜한 복도에 불이 켜진 집이라고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203호였다. 언제 수다를 떨었냐는 듯 넷은 꼭 입을 다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여기서는 누가 가지? 갑자기 찾아가면 이상하잖아.”
“이럴 때는 그거지? 봉사활동...왜, 독거노인 방문 같은거.”
보드람의 말에 지하가 대답했다.
“그거라면 우리 이쁜이가 담당하면 되겠군.”
승하가 소리 죽여 웃으며 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엥, 나? 놀란 것처럼 파르르 몸을 떨며 연은 승하를 돌아보았다.
“떡볶이 값 해야지?”
연은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슬그머니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계...세요?"
이 연이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며 못내 입을 열었다. 이후의 적막 속에서 일행은 귀를 곤두세웠다. 잠시 후 터덜거리는 발소리가 문 너머에서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슈..."
잔뜩 맥이 풀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봉사활동 왔는데요. 조심스러운 연의 목소리에 이내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체인이 걸린 문 너머로 후덕한 몸집의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소리만큼이나 수척한 얼굴이었다. 들어와요. 잠시 살피는 듯한 눈초리로 일행을 보던 남자는 체인을 풀며 그렇게 말했다.
방 안은 발 하나 편하게 딛을 곳이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여기저기 쓰레기며 술병, 담배 꽁초가 나뒹굴고 있었고 벽마저도 신문 스크랩이나 메모로 빼곡했다. 연과 지하가 아연실색하는 사이 보드람만,
“오, 존나 내 방 같다...아늑해.”
그런 감상을 말하고는 쫄랑쫄랑 남자에게 다가가 친근한 척 말을 붙였다. 가져온 소주병을 꺼내 보이면서. 그것이 남자의 관심을 사기 충분했던 모양인지 남자는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부엌에서 컵 몇 개를 꺼내왔다.
“야, 술 먹지 말고 할 일을 해.”
능숙하게 소주병을 흔들어 따는 보드람의 모습을 보며 승하가 핀잔을 줬지만, 보드람은 원래의 목적이 뭐였는지 잊은 것처럼 신나게 받으시오, 받으시오 하면서 남자의 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다.
“승하야.”
그러는 사이 작게 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이 마주치자 지하는 벽 쪽을 눈짓했다. 승하는 남자가 보드람과의 술대작에 정신이 팔린 것을 확인하고 슬쩍 걸음을 지하 옆으로 옮겼다. 벽에 붙은 메모와 기사들은 모두 양한시에서 일어난 무기력증 사건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저씨, 잠시만요. 아저씨도 그...무기력증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는거에요?”
기사들을 본 승하가 목소리를 높여서 물었을 때였다. 쨍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잔이 바닥을 굴렀다. 그 소리의 모두의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그, 것은, 그...그...그, 것은, 그, 거어어….”
잔을 놓친 남자의 손은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도 바로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어어어, 이 아저씨 왜 이래!!"
연과 보드람이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남자는 벌벌 떨던 것으로 모자란듯 아예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양 손으로 움켜쥐고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림자….그, 그림자아...너무 많은 그림자...아, 아. 그들이 올거야...그들이….모든 걸 잡아먹는 그들이 온다, 아, 아, 아아, 아! 아...아아아….!”
어떡하지. 대화가 될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놀람과 당혹스러움을 담은 눈초리를 교환하며 일행은 남자의 모습을 살폈다. 남자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연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으아..아, 아..아아....어둠이..어둠이 온다...푸른 날개 광장...아아아...아아아..푸른 새, 푸른 새 조각상 아래, 에, 아아, 아아아!!"
남자의 말은 떨림에서 흐느낌으로, 그리고 이내 비명으로 변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른 남자는 방금 전까지의 모습은 간 곳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행을 노려보았다.
"아..아아..나가!! 나가!!!!"
포효하듯 남자는 소리지르며 일행의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떠밀리듯 문 밖으로 쫓겨난 일행의 귀에 철컥 철컥, 몇 중으로 된 잠금장치가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냐...대화가 안될 것 같은데."
다시 컴컴하고 조용한 복도에 서서,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보드람이었다.
"아까 뭐라고 그랬지? 그림자? 푸른 새? 이 정도 단서면 만족하시나이까, 고용주님."
미친 사람이라더니 사실인가보네. 승하는 살짝 눈살을 찌뿌리며 닫힌 문을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공원 쪽도 가볼까?”
“난 찬성. 보통 게임 하다보면 그쪽으로 가는게 답이던데."
“올. 역시 오타쿠나 할 법한 발상.”
연이 맞장구치자 보드람이 빈정거리는 어조로 대답했다.
“푸른 날개 공원이면 전철 타고 곧장이니까...가자. 추가 수당으로 떡볶이 추가해줄게.”
“예아. 그럼 가야지, 뭐.”
승하의 말에 지하도 동의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여간 그놈의 떡볶이. 투덜거리면서 내키지 않는다는 듯 가장 늦게 일행의 뒤를 따르면서도 보드람은 내심 싫지는 않은 듯 면면이 미소를 띠고는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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