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TRPG 리플레이/리플레이 소설

CoC 시나리오 '이상한 나라의 쇼거스'-프롤로그 : 제인 / 알렉스 편

시나리오 '이상한 나라의 쇼거스'

키퍼링 : 노멘님

시나리오 번역 : 연어님

플레이어 : 에노님 (제인)



-----


제인의 오늘 업무는 꽤 예상치 못한 결말로 끝이 났다. 자꾸만 거들먹거리며 무리한 요구를 해대던 의뢰주는 지금 제인의 차 트렁크 안에서, 제인이 거칠게 차를 모는대로 맥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트렁크에 차곡차곡 들어갈 수 있도록 해체하는 과정은 꽤 귀찮았지만 어쨌든 집으로 운전해 돌아오는 길은 후련하기 짝이 없었다. 딱히 계획하고 저지른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가벼운 기분에 제인은 속력을 높였다. 뻥 뚫린 밤길에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인이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갑자기 도로를 가로질러 눈 앞을 휙 지나가는 하얀 물체 때문이었다. 돌연 차 앞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그 낯선 형상에 다급히 제인은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미끄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차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하얀 물체에 충돌했다.

순간 제인은 위화감을 느꼈다. 눈으로 보기에는 충돌했다고 생각했는데, 유리창이나 범퍼에 부딪히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제인은 차를 세웠다. 그리고 손을 뻗어 조수석에 놓인 톱을 집어 들었다. 부딪친 게 어떤 것인지 잘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이면 아무래도 귀찮아진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인이 연장을 챙겨 차 앞으로 가보자, 그 곳에는 사람처럼 의복을 갖춰 입은 하얀 토끼가 두 발로 서 있었다. 차에 부딪히지 않은 것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손을 핥고 귀를 매만지는 모습이었다.


제인은 말 없이 그 모습을 쳐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제인을 발견한 토끼는 놀란 듯 귀를 쫑긋거리며 깡총깡총 두 걸음을 더 뛰어 제인으로부터 멀어졌다. 제인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토끼는 차를 사이에 두고 제인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양 두 발로 걸어서.


차 트렁크 쪽을 향해 킁킁거리던 토끼를 보고, 제인은 토끼를 향해 달려갔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엄마한테 토끼를 보여줘야지. 제인의 커다란 손을 피해 요리조리 달려가는 토끼의 뒤를 쫓으며 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토끼를 쫓아가는 데 흥미를 붙인 것처럼 보이는 제인과, 그런 제인을 보며 겁을 먹은 듯 두 발로 달려가는 토끼의 추격전이 밤의 도로 위에서 계속되었다.


가까이 따라붙어 거의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제인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정확히는 토끼 아래, 원래대로라면 있을 리 없는 검은 허공을 휘적거리는 빈 손이 보였다. 허공을 스치는 손을 바라보며, 제인은 다급히 버둥거렸지만 아무 것도 손에 닿는 것은 없었다. 무의미한 발버둥을 치며 제인의 몸은 하염없이 검은 구멍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플레이어 : 상아님 (알렉스 (이하 렉시))



-----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시원했다. 지금 기분과 딱 어울리는, 적당히 선선하고 화창한 날씨였다. 아버지와의 사냥은 오랜만이었다. 사격 많이 늘었다고요. 조수석에서 내내 그렇게 말하던 렉시는 방금 막 보란듯 오리를 쏘아 맞춘 참이었다. 신이 나 총을 아버지에게 맡겨두고 껑충껑충 달려 떨어진 오리를 찾아 손에 쥐었을 때였다. 가까운 수풀에서 바스락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렉시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길게 웃자란 풀 사이로 보이는 것은 새하얀 토끼였다. 렉시가 놀란 것은 그곳에 토끼가 있다는 사실이 아닌, 그 토끼가 마치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매니악한 카페 종업원이나 입을 법한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서, 토끼는 귀를 쫑긋거리며 렉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렉시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 찰나에 토끼는 사진에 찍히기 싫은 것처럼 달려 카메라의 사정권에서 달려 사라졌다.


"아, 안돼! 가지 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한 손에는 방금 잡은 오리의 목을 꽉 틀어쥐고 렉시는 토끼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는 마치 자기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발로 달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망설이던 렉시는 토끼를 쫓아 숲 속으로 들어갔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렉시 자신도 아는 장점이었다. 까짓거 길이야 외워서 돌아나오면 되겠지.


"두 발로 뛰는 토끼라니...잡아다 연구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렉시는 토끼를 쫓아 숲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낯선 숲 속에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렉시는 어느샌가 발 밑에 도사린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당황한 렉시는 어딘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구멍은 렉시보다도 훨씬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 손에 든 오리를 더욱 꽉 움켜쥐고,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를 구멍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렉시는 의식을 잃었다.

COMMENT